지금 많은 사람들한테 정어리라고 하면 그다지 익숙한 느낌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현재 한국인의 식탁에서 정어리는 사라진 지 오래이니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1930년대까지만 해도 정어리는 한반도의 바다에서 흔하게 잡히던 생선이었습니다.
특히 1923년부터 갑자기 한반도의 동해에 나타난 정어리 떼는 그 수가 얼마나 많았는지, 당시의 상황을 회고하는 노인들의 말에 의하면 동해 바다에는 ‘바닷물이 절반이고 정어리 떼가 절반’이었으며, 심지어 정어리 떼가 너무나 많아서 마치 섬처럼 보였고 배가 부딪쳐 침몰할 정도였다고 전해집니다.
이렇게 풍족한 정어리 떼에 조선을 지배하고 있던 일제가 눈독을 들였습니다.
원래 일본인들은 서기 8세기부터 불교의 가르침에 따라 소와 돼지와 닭 같은 가축들의 고기를 먹지 않는 육식 금지령을 지켜왔고, 그래서 부족한 단백질을 바다에서 잡히는 해산물로 보충하며 살아왔습니다. 그중에서 고기를 대신하여 일본인들의 식탁에 올라온 단백질을 포함했던 음식이 바로 정어리였습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정어리를 잡아오다 보니 1900년대 초반이 되면 일본의 바다에서 정어리는 거의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수가 크게 줄어들었습 니다.
그러던 와중인 1923년부터 식민지 조선의 동해에 엄청난 수의 정어리 떼가 나타났다는 소식이 들리자, 일본인 어부들은 앞을 다투어 동해로 배를 몰고 가서 정어리 떼를 마구잡이로 잡아들였습니다. 하루에 일본 어선 한 척이 많게는 2천 마리에서 적어도 700마리 이상의 정어리를 흔하게 잡았다고 합니다.
일본인 어부들이 정어리를 그토록 많이 잡았던 것은 단순히 식재료로만 쓰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정어리는 기름이 많은 물고기였고 정어리에서 짜내고 정제한 기름은 화약, 글리세린, 비료, 화장품, 마가린, 비누, 양초 같은 여러 가지 쓸모가 있는 물건들을 만드는 데에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대략 1900년부터 일본에서는 정어리기름을 온유(鰮油)라고 부르며 공업용 기름으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1920~1930년대의 일본에서 만들어지는 생선 기름들의 약 90%가 정어리기름이었다고 합니다.
특히 정어리 기름은 일본군에게 매우 유용한 물건이었습니다. 193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이 사용하는 석유의 80%를 미국에서 수입하고 있었는데, 1937년부터 일본이 중국으로 쳐들어가 중일전쟁을 일으키자 미국 정부는 “미국이 중국에 투자한 자본이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는 바람에 모두 파괴되었다. 그러니 일본은 중국에서 철수하라.”라고 압력을 넣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실세인 일본 군부는 미국의 압력을 거부했고 이에 미국이 일본에 수출하는 석유를 규제하려고 하자, 일본 군부는 전쟁을 더 계속하기 위해서는 미국에 석유를 의존하지 말아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조선의 동해에서 잡히는 정어리의 기름을 정제하면 일본군이 사용하는 석유를 대체할 수 있다는 사실에 일본 군부는 주목하였습니다.
특히 1935년 조선에서 생산된 정어리 기름의 양은 10만 톤에 달했는데, 이 정도면 미국산 수입 석유에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는 낙관적인 전망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이 미국과의 태평양전쟁을 앞둔 시기인 1940년에는 일본군이 사용으로 사용하는 전체 기름의 약 절반이 정어리기름으로 쓰일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1939년까지 동해에서 잡히는 정어리 떼의 1년 어획량은 120만 톤에 달했으나, 1940년이 되자 갑자기 90만 톤으로 줄어들었습니다. 그리고 1년 후인 1941년에는 63만 톤으로, 그 다음 해인 1942년에는 2500톤으로 무려 250분의 1로 급격히 감소해 버렸습니다. 심지어 1943년이 되자 동해에서는 아예 정어리 떼가 감쪽같이 자취를 감추고 말았습니다.
이 현상에 대해 조선총독부에서는 “바다 속에 흐르는 해류가 변해서 정어리 떼가 더 이상 동해에 오지 않게 되었다.”라고 주장했지만 그보다는 일본인 어부들의 지나친 남획으로 인해 정어리 떼의 씨가 말라 자연스레 정어리가 더 이상 잡히지 않게 되었다고 해석해야 적합하지 않았을까요?
실제로 일제 강점기 동안, 일본인 어부들은 동해의 어족 자원에 대해 마구잡이로 잡아들여 씨를 말리는 행태를 여러 번 벌였습니다. 그 결과, 원래 ‘고래들의 바다’라고 불릴 만큼 동해에 가득했던 귀신 고래들이나 독도에 분포하던 강치들도 일본 어부들의 남획에 휘말려 멸종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정어리 역시 일본 어부들의 남획으로 인해 멸종 위기에 몰려 사라졌다고 보아도 무리는 아닙니다.
그리하여 정어리 떼가 사라진 1943년부터 조선총독부는 조선의 바다에서 활동해 오던 어부들한테 정어리 잡이를 중단하라고 지시를 내렸습니다. 이유는 미국과의 전쟁을 앞두고 일본에 비축한 석유의 양이 부족한 판국에 잡히지도 않는 정어리를 찾겠다고 어선들이 귀중한 석유를 연료로 소모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하기야 조선총독부의 지시가 아니더라도 이미 조선의 동해에서 자취를 감춘 정어리는 더 이상 잡힐 수가 없었습니다.
1941년 12월 7일 미국 하와이의 진주만을 일본 해군이 기습하면서 미국은 일본으로 수출하는 모든 석유를 끊었는데, 당시 일본에 남아있는 석유의 양은 3년 6개월 치가 전부였습니다.
여기에 정어리마저 더 이상 잡히지 않으니 1945년부터 일본은 전함들조차 바다에 나가는 것을 꺼려할 만큼 기름 부족에 시달리다가 결국 그해 8월 15일 미국에 항복하였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두고 조선에서는 정어리를 가리켜 일본을 망하게 한 물고기라고 하여 ‘일망치’라고 불렀다고 전해집니다.
그리고 더 찾고 질문해가며 찾은 정보
개소리까진 아님 비효율적이어서 문제지.
하나 유전이나 석유수입 안 되는 나라에선 방법이 없는 거지.
괜히 낚지가 석탄액화로 기름 만들면 석유 수입하는 거에 몇 배나 돈 들어가고
시간과 인력 소모되는데도 석탄액화로 석유충당하려 했겠음?
인조석유의 메인은 석탄을 액화시키는거임.
그래서 한반도북부의 아오지광산에 액화 플랜트를 지음
근데 한반도는 무연탄이라 액화하기 거진 불가능한 놈에
당시 일본의 중화학공업은 독일에 비해선 한심하기 그지없어서
가성비 개똥망에 당시 일본해군이 원한 석유가 끊길 때의 비상용으로 쓸려고 한 건데 제대로 되지도 않음
ㅈ본은 그런 기술도 없으니 하다못해 정어리기름이나... 송진유같은 것도 개발하고 써먹으려 한 거지
ㅈ본 태평양전쟁 전에 계획했다는 정어리 기름 계획은 어디까지나 남방 자원지대와
유전확보하고 기름 운송할때까지의 빈틈을 채워주는 보조수단에 가까움.
남방 작전 성공하고 유전확보했으면 기름 뽑아올 수 있는데 왜 돈 몇 배씩 들어가는 정어리기름 가지고 전쟁계획함?
문젠 극초반 남방작전 성공까진 했는데 안전한 유전확보와 기름 운송할 수송선도
확보 안된 상황에서 정어리 기름가지고 빈틈 메꾸려는 계획 세운 거 자체가 따갑되인 미친 계획이었다는 거지.
이기면 다 해결됨. 근데 이겼느냐? ㅎㅎㅎㅎㅎ
3줄요약
1: 전쟁 내내 쓸 게 아니라 유전 확보까지만 쓸 생각
2: 수송선 없이 전쟁 벌임
3: 패전을 상정하지 않고 전쟁계획 세웠다가 져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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