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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볼만한곳 -

1박2일 겨울 속초 여행

by ⓓ ̄ⓑⅤ 2024. 7. 2.

설악 케이블카를 타고 권금성에 오르면 속초 시내와 파란 바다가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1박 2일의 짧은 여행이었다. 그런데 떠나기 전부터 시작해 속초 여행을 하기까지, 계획만 대여섯 차례 조정하고 고민했다. 그저 바다가 보고 싶을 때나 회 한 접시 에 소주 한잔 떠오를 때 혹은 설악산의 웅장한 기백이 그리울 때면 언제고 훌쩍 다녀온 곳이었음에도 이번 여행은 유독 마음이 쓰였다. 한겨울의 변화무쌍한 날 씨 탓도 있었고, 새로운 명소가 여럿 생겨 욕심 많은 여행자 심보를 품은 이유도 있었다.

 

여행을 떠나기로 한 날도 하필 전국에 종일 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있어 결국 하루를 미뤄 출발했다. 비 온 다음 날이어서 파란 물감을 풀어놓은 것처럼 하늘이 맑아 눈 호강을 했다. 설악산에 오르면 멀리 속초 시내와 바다까지 한눈 에 볼 수 있으리란 기대에 첫 목적지로 정했다.

 

권금성 아래에서 마주한 겨울 왕국. 새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인 인생 최고의 설경을 만났다

인생 최고의 설경

설악산 입구부터 설렘이 커졌다. 전날 비 예보가 있어 미룬 일정인데 설악산은 뜻밖에 새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인 설경으로 맞아주었다. 곧장 설악산국립공 원 소공원에 위치한 케이블카를 타러 달려갔다. 설악 케이블카는 5~10분 간격 으로 해발 700m의 권금성까지 왕복 운행한다.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이나 날씨 가 좋지 않으면 종종 케이블카 운행이 중단되기도 하는데, 다행히 정상 운행 중 이었다.

 

케이블카를 타고 10분쯤 올랐을까. 창밖으로 펼쳐지는 외설악의 비경에 감탄사를 내뱉을 여유도 없이 어느새 승강장에 다다랐다. 승강장에서 권금성까 지는 그리 멀지 않은 길인데 눈길이 미끄러워 바짝 긴장한 채 천천히 걸어 올랐 다. 산책로는 눈이 녹아 있었지만 사방의 나무며 발길이 닿지 않은 길에는 소복 한 눈이 그대로여서 새하얀 겨울 왕국 같은 설악산을 마주했다.

 

고려시대 몽골 의 침입을 막고자 권 씨와 김 씨 두 장수가 하룻밤 만에 성을 쌓아 권금성으로 불리는 거대한 바위 아래는 무릎 높이까지 눈이 쌓여 걷기도 쉽지 않았다. 미끄 러져 엉덩방아도 여러 차례 찧었지만 아프거나 창피한 생각도 안 날 만큼 멋진 풍광에 이끌렸다. 마침내 권금성 아래 올라서니 외설악은 물론 멀리 속초 시내 와 파란 바다까지 파노라마로 펼쳐져 가슴이 뻥 뚫리는 듯 황홀한 기분이 들었 다. 들숨과 날숨을 의식해 길게 호흡하며 인생 최고의 설악산을 가슴 깊이 꾹꾹 새겨 넣었다. 한참을 그러고도 아쉬움이 남아 그 순간 생각나는 몇몇에게 사진 을 전송하고 메시지를 보냈다. 이렇게 멋진 곳에 꼭 한번 같이 오고 싶다고.

 

속초아이대관람차가 위치한 속초해변. 길게 뻗은 모래사장에는 돌고래 모형부터 다양한 조형물이 가득해 기념사진을 남기기 좋다.

동해의 떠오르는 명소

속초에 다녀간 숱한 기억을 떠올려보면 속초해변과 대 포항이 대부분이다. 속초해변에서는 해수욕을 즐기거나 ‘바다멍’을 했고, 대포항에서는 가격 흥정을 하며 횟감 을 찾아다닌 추억이 있다. 20대 때의 일이니 시간이 한 참 흘렀고 지금의 속초는 젊은 감각이 더해졌다. 속초해 변에는 지난해부터 운행하기 시작한 속초아이대관람차 가 단숨에 동해의 랜드마크로 떠올랐고, 말끔하게 정비 한 대포항에는 회센터, 홍게 맛집, 튀김을 파는 분식 코 너 등이 구역을 나눠 여행자를 반긴다.

2022년 운행을 시작해 단숨에 속초의 명물이 된 속초아이대관람차.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해변에 위치한 속초아이대관 람차는 전국에서 발길을 불러 모으는 핫한 명물이다. 오픈 소식을 접했을 때부터 꼭 한번 타보고 싶어 미리 예매해두고 찾아왔다. 설악 케이블카와 마찬가지로 강 풍이나 우천 시에는 운행이 중단된다. 매일 오전 10시부 터 저녁 8시까지 운행하는 대관람차는 정원 6명이 탈 수 있는 관람차가 36대로, 최대 216명이 동시에 이용할 수 있는데 주말에는 줄이 제법 길다는 후기도 있다. 사방이 통유리로 된 관람차에 올라타 바다와 설악산을 넓 은 시선으로 바라보니 감동도 더 웅장해진다. 제일 꼭대 기인 아파트 22층 높이까지 올랐을 때는 아찔한 기운이 감돈다. 관람차가 한 바퀴 돌아가는 20여 분의 시간은 천천히 흐르는 듯하지만, 내릴 때가 되면 아쉬움이 남 을 만큼 짧게 느껴진다.

 

앙젤루스 소원테마파크 속초아이점은 대관람차 탑승 후 함께 체험해보면 좋을 공간이다. 소원을 테마로 우리 나라는 물론 동양과 서양의 행운을 상징하는 다양한 이 야기를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어 이색적이다. 흥미로운 전시물과 체험 거리가 가득하고 포토 스폿이 많아 이색 사진을 남기기도 좋다. 어린 시절 장난처럼 하던 놀이 아이템도 많은데, 자칫 유치하게 생각할 수 있는 전시물 이지만 절로 미소 지어지는 기분 좋은 공간이다. 어느새 근심과 걱정을 싹 비우고 새해 행운을 기원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맑고 깊은 바닷속부터 신비한 우주까지 환상 여행을 오감으로 즐기는 뮤지엄엑스.

 

제주와 강릉을 대표하는 문화공간으로 아르떼뮤지엄이 있다면, 속초에는 뮤지엄엑스가 있다. 지난해 8월 오픈 한 4층 규모의 신상 전시관에서는 가상현실(VR), 인공 지능(AI), 홀로그램, 게임 등 최신 기술을 오감으로 체 험할 수 있어 흥미롭다. 입구부터 화려한 빛의 패턴이 반복되는 거대한 만화경을 지나면 최첨단 놀이터가 펼 쳐진다.

 

몸의 움직임과 손짓대로 빛과 소리가 변하는 라 이팅 쇼, 뛰어오를 때마다 다채로운 영상을 보여주는 레 이저 트램펄린, 가상 공간을 날아오르는 듯한 경험을 선사하는 그네 등 빛과 소리, 영상, 음악, 향기의 모든 요소가 오롯이 나에게 맞춰 반응한다. AI와 채팅을 통 해 나를 위한 포토존을 만들어주고, 휴머노이드 로봇이 대화하며 초상화도 그려주니 그야말로 어디서도 경험하 지 못한 특별한 시간으로 기억에 남을 듯하다.

 

앙젤루스 소원테마파크 속초아이점에서 만난 행운의 타로 카드. 지정된 포토존에 서서 포즈를 취하면 나만의 행운 카드가 완성된다.

 

여전히 멋있는 낭만, 맛있는 속초

새해 속초 여행을 계획하면서 빠뜨릴 수 없는 일정은 해 돋이를 감상하는 것이다. 이번 여행길에도 ‘밝은 동해’라 는 이름의 동명항에서 일출을 보려고 근처에 숙소를 잡 았지만 아쉽게도 날이 맑지 않아 감동적인 아침을 열지 는 못했다. 동명항 인근에는 속초 등대와 영금정, 해맞 이 정자가 모여 있어 날씨만 허락한다면 속초의 명물 사 이에서 장엄하게 떠오르는 태양을 만날 수 있다.

 

속초 1 등대 밑자락에 자리한 영금정은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가 마치 거문고 소리처럼 영롱하다는 뜻에서 유래한 지명답게 시야가 탁 트 인 바다를 감상하기 좋다. 비록 아름다운 해돋이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지난밤 오색 조명을 밝힌 영금정 야경을 눈에 담아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아쉬운 마음에 바다 좀 더 가까이에서 산책이라도 할 마음으로 외옹치바다향기 로를 찾았다.

바다를 벗 삼아 산책하기 좋은 외옹치바다향기로

 

외옹치항과 외옹치해수욕장을 연결하는 총길이 890m의 산책길이 다. 원래 안보 철책선이 설치돼 민간인 출입을 제한하던 군사 시설이었는데, 출 입 통제 65년 만인 2018년 4월 개방해 비교적 때 묻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해안 풍경을 만날 수 있다. 기암괴석에 부서지는 파도 소리에 발맞춰 걷다 보니 매서 운 바닷바람도 괜스레 상쾌하게 느껴졌다.

 

30분 정도 걷다 보니 그제야 뜨끈한 국물 생각이 나서 속초관광수산시장으로 향했다. 시장 인근 식당에서 언젠가 한번 맛본 이후 내내 생각나던 감자옹심이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오랜만에 먹 어도 역시 옹심이의 쫀득한 식감과 고소한 국물 맛은 그대로다. 미각도 쉽게 잊 히지 않는 것인지 속초만 오면 생각나는 음식이 많다.

 

속초해변에 위치한 동해안붉은대게의 대표 메뉴인 홍게간장게장. 살이 꽉 찬 홍게장의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설악산에 오르기 전 필수 코스인 할머니순두부, 한겨울에도 군침 돌게 하는 새콤달콤한 오징어물회, 아바 이마을 오징어순대, 주머니 사정 생각해서 큰마음 먹고 한 번씩 먹는 대게와 홍게…. 겨우 1박 2일의 여정이었기에 끼니를 선택하는 것도 고심을 거듭했다. 더군 다나 신상 맛집도 줄줄이 문을 열었다는 소식에 마음속 경쟁이 더 치열했다. 홍 게살로 가득 채운 샌드위치, 에그타르트를 맛보려면 이제 마카오가 아닌 속초 여행을 해야 한다는 후기가 있을 정도로 핫한 디저트 가게, 주말에 하염없이 줄 을 서지 않으려면 오픈런이 필수라는 수제 아이스크림 가게도 있다. 마음 같아 선 1일 5식 정도는 하고 싶었지만, 다음 여정을 위해 참아보기로 했다.

 

1956년 문을 열어 3대째 운영해온 동아서점. 이곳의 역사가 담긴 책과 기념품도 진열돼 있어 흥미롭다.

대신 마음의 양식을 채우기 위해 속초 여행길에서 빠뜨리지 말아야 할 또 한 곳, 동아서점을 들렀다. 1956년 문을 열어 70년 가까운 세월을 3대가 이어 운영하는 서점 이다. 속초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으로 이 지역의 흥미로운 이야기가 깃들어 있 는 곳이다. 여기에서는 시간 체크를 잘해둬야 한다. 감각적인 큐레이션으로 진열 된 책을 구경하다 보면 두세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버리니 말이다.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사랑받는 속초의 수많은 명소와 요즘 새롭게 떠오르는 장소를 두루 만나고 경험한 여행길. 마음에 남긴 후기는 딱 두 문장이다. ‘역시 속초다.’ 그리고 ‘다시 속초다.’

 

 

설렘 가득한 속초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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