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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볼만한곳 -

겨울과 봄, 그 어디쯤의 오키나와 여행

by ⓓ ̄ⓑⅤ 2024. 7. 2.

 

 

파란 물감이 뚝뚝 떨어질 듯 말간 하늘, 쏟아져 내리는 햇살, 투명한 에메랄드부터 짙은 코발트블루까지 층층이 그러데이션을 이루는 바다, 초록으로 일렁이는 숲과 대지를 뒤덮은 사탕수수 물결, 기기묘묘한 절벽과 기암괴석…. 오키나와는 두 눈 이 번쩍 뜨일 만큼 시각적 청량감이 압도적인 곳이다.

 

 

흡사 톡 쏘는 사이다를 쭉 들이켤 때의 느낌 같다. 특히 겨울은 청정함이 배가된다. 겨울이라 해봤자 우리의 봄에 가깝다. 섬 특유의 강한 바람이 시시때때로 불어오지만, 10~20℃ 안팎의 습 도 없는 쾌적한 날씨는 싱그럽기 그지없다. 두꺼운 겨울 외투는 잠시 벗고 나풀나 풀 가벼운 발걸음으로 한갓진 오키나와를 누비기에 지금이 적기다.

 

나하 시내 곳곳의 관광지를 연결하는 유이레일. 1day 패스를 구입하면 24시간 무제한 이용 가능해 경제적이다.

 

오키나와 여행의 중심, 나하

오키나와의 오랜 수호신 시사. 암컷과 수컷이 늘 한 쌍으로 붙어 다니는데, 하나는 입을 벌려 복을 받아들이고 다른 하나는 들어온 복이 나가지 않도록 입을 꾹 닫고 있다고.

 

섬 160여 개가 옹기종기 모여 군도(群島)를 이루는 오키나와 여행은 주로 본 섬인 나하섬에 집중된다. 세로로 길쭉한 나하섬은 남북으로 100km에 달할 만큼 커서 공항과 편의 시설이 밀집한 남부를 거점으로, 렌터카를 타고 북 부와 중부를 여행하거나 버스 투어를 통해 둘러보는 게 일반적이다. 특히 나 하 시내는 공항부터 주요 여행지를 잇는 유이레일(모노레일)이 있어 이동하기 편리하다. 나하 시내에서 가장 번화한 중심지는 국제 거리로 통한다.

 

나하 시내의 번화한 중심지 국제거리, 고쿠사이도오리. 전쟁의 폐허 위에 세워진 쇼핑 거리로, ‘기적의 1마일’로 불린다.

 

아기자기한 기념품부터 오키나와를 대 표하는 특산품과 먹거리를 맛볼 수 있는 여행 필수 코스다. 유이레일의 겐초마에 역 앞부터 마키시 역까지, 총 1.6km의 쭉 뻗은 거리를 따라 각종 기념품점과 카페, 백화점, 호텔이 자리한다. 낮에는 쇼핑을 위해, 밤에 는 포장마차가 모여 있는 야타이무라를 찾는 인파로 거 리는 늘 북적인다. 국제거리에서 꼭 맛볼 음식은 단연 스테이크다.

 

국제거리의 포장마차촌, 야타이무라.

 

거리를 걷다 마주치는 점포만 수십 개에 달 한다. 최고급 호주산 소고기와 오키나와산 와규를 즐기 는 철판 요리 전문점 헤키(Heki), 맛은 물론 화려한 퍼 포먼스가 돋보이는 샘스 세일러 인(Sam’s Sailor Inn) 을 비롯해 가성비가 뛰어난 얏파리 스테이크(やっぱりス テ―キ)와 스테이크 정석으로 통하는 스테이크하우스 88(ステ―キハウス88)이 대표적이다.

 

스테이크로 배를 든든하게 채웠다면, 본격적인 쇼핑 리 스트를 채울 차례. 오키나와 특산품으로는 소금과 흑당이 유명하다. 청정한 바다에서 채취한 오키나와 소금 은 염분은 낮고 미네랄 함유량이 월등하다. 국제거리 중 간쯤 헤이와도리 시장 바로 앞에 자리한 마스야(塩屋) 는 이름난 소금 가게로, 일명 ‘눈꽃 소금’이라 불리는 오 키나와 소금을 살 수 있다.

 

오래전부터 사탕수수를 재 배한 오키나와 사람은 흑당을 즐겨 먹었다. 사탕수수즙 을 오랜 시간 졸여 만든 흑당은 단맛이 과하지 않으면 서도 향미가 풍부하다. 천연 단맛을 자랑하는 오키나와 흑당을 함유한 디저트로 바움쿠헨이 빠지지 않는다. 통 나무의 나이테처럼 얇은 반죽을 켜켜이 쌓으며 굽는 바 움쿠헨 전문점인 후쿠기야(Fukugiya)는 오키나와 흑당 을 사용해 한층 고급스러운 맛을 자랑한다. 이 밖에 오 키나와식 하와이안 셔츠인 카리유시, 자색고구마 타르 트 베니이모, 액운을 막는 오키나와 수호신 시사가 기념 품으로 인기다.

 

 

 

벚꽃이 반기는 곳

1월부터 오키나와 곳곳을 붉게 물들이는 선명한 핑크색 벚꽃, 칸히자쿠라.

일본 최남단에 자리한 오키나와는 본토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남 국의 이국적인 정취도 한몫하지만, 19세기 일본에 병합되기 전까지 약 450년 간 오키나와를 다스린 류큐 왕국의 독자적인 문화가 남아 있어서다. 덕분에 일본인에게도 오키나와는 색다른 감흥을 전하는 인기 휴양지다. 도시에서의 분주한 일상은 훌훌 털어버리고, 자연의 여백 속에서 온전한 휴식을 취하는 완벽한 도피처로 사랑받는다.

 

겨울엔 더더욱 여유를 즐기기 좋다. 앞서 말했 듯 오키나와의 겨울은 봄이라 해도 무방할 만큼 온화하다. 덕분에 일본에서 벚꽃이 가장 먼저 개화하며 봄을 알려온다. 오키나와의 벚꽃은 짙고 선명한 진분홍색을 띤다. 1월 초부터 서서히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해 2월 초에 만 개하며 봄날의 고운 정취를 자아낸다. 아름다운 자연 절경과 함께 벚꽃을 감 상할 수 있는 명소로 야에다케 공원과 나고 성터, 나키진 성터와 야에세 공 원이 유명하다.

 

 

 

자연 그대로의 색을 만나다

이른 아침, 나하 시청 앞에 버스 여러 대가 도열한다. 여 행객을 싣고 떠날 채비를 서두르는 투어버스다.

 

섬 제일 의 절경으로 꼽히는 만좌모(万座毛)를 시작으로 물빛 고 운 바다를 가로지르는 코우리 대교를 눈에 담고, 고래 상어가 유영하는 추라우미 수족관과 저녁노을로 붉게 물드는 아메리칸 빌리지를 둘러보는 북부 버스 투어는 렌터카 운전이 부담스러운 이들에게 더없이 훌륭한 대 안이다.

 

첫 도착지는 ‘만 명이 앉아도 충분할 만큼 넓은 벌판’이 란 뜻에서 유래한 만좌모다. 입장료를 내고 잘 정비된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가장 먼저 산들바람이 반긴다. 사 방이 탁 트인 해안 절벽이라 사정없이 몰아치는 바람의 기세가 대단하다. 온몸으로 바람을 맞으며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절벽에 부서지는 파도 소리와 산호초를 품은 맑디맑은 바다가 생생하게 다가온다.

코끼리 형상의 바위가 반기는 만좌모. 탁 트인 벌판 위로 파도와 바람이 몰아친다.

 

푸르고 너른 초원 너머로 코끼리를 닮은 바위가 우뚝 솟아 있다. 육 중한 덩치와 아래로 길게 내려뜨린 코는 바닷물을 마시 고 있는 듯한 영락없는 코끼리 형상이다. 10분 남짓이면 둘러볼 만큼 만좌모의 규모는 크지 않지만, 두고두고 기 억에 남을 오키나와의 절경으로 꼽을 만하다. 만좌모에서 한참을 달려 북쪽으로 향하면 거대한 코우 리 대교가 눈에 들어온다. 야가지섬과 코우리섬을 잇는 대교로, 오키나와에서 가장 긴 해중 도로이자 사진 명소다. 다리 아래로 투명한 옥빛 바다가 넘실대는 풍경은 비 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큼 아름답다.

투명한 바다 한복판을 드라이브할 수 있는 코우리 대교.

 

나하섬 북부 지역은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자연경관이 펼쳐진다. 세계자연유 산에 등재된 얀바루국립공원 일대에 2025년, 영화 <쥬라 기월드>를 연상시키는 일본 최대 규모의 테마파크가 들 어설 예정이다. 오키나와의 자연에 정글을 접목한 놀이 공원으로, 바다와 정글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열기 구와 집라인을 비롯한 다양한 체험을 즐길 수 있어 기대 를 모은다. 북부 여행의 색다른 체험으로 혹등고래 보트 투어도 놓칠 수 없다. 매년 1월부터 3월까지 오키나와 바 다에는 혹등고래가 자주 출몰한다. 모토부 지역을 비롯 해 코우리섬, 세소코섬에서 출발하는 보트 투어는 2~3 시간 소요되며, 보트 가까이 접근해 멋진 점프 장면을 보 여주는 혹등고래의 매력에 푹 빠지기 좋다.

 

나하섬 북부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혹등고래 보트 투어는 1~3월이 최적기다.

 

두고두고 기억될 순간

북부 버스 투어는 추라우미 수족관을 보기 위해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난히 맑고 투명한 오키나와 바 다는 스노클링과 스쿠버다이빙을 즐기기에 완벽한 장소 다. 하지만 겨울에는 바다 입수가 힘든 만큼 오키나와 바닷속을 그대로 옮긴 듯한 추라우미 수족관이 좋은 대안이다.

 

추라우미 수족관은 해양박람회 기념공원에 속해 있다. 수족관을 비롯해 열대·아열대 식물원, 해양 문화관, 에메랄드 비치 등이 한곳에 모여 있어 모두 둘 러보려면 하루로는 부족하다. 시간 여유가 많지 않다면, 추라우미 수족관과 탁 트인 바다를 배경으로 돌고래 쇼 를 관람할 수 있는 돌고래 공연장은 꼭 들러보길. 진귀 한 산호초를 비롯해 해양생물 680여 종이 전시된 추라 우미 수족관은 오키나와 바닷속의 해양생태계를 간접 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육중한 고래상어의 위엄을 느낄 수 있는 추라우미 수족관의 메인 수조.

 

희귀한 생물을 구경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는데, 그중 으뜸은 ‘구로시오해’ 메인 수조다. 광활한 우주를 옮겨놓은 듯 거대한 수조 안에는 몸길이 8m에 이르는 대형 고래상어가 미끄러지 듯 유영한다. 육중하지만 우아한 고래상어의 몸놀림은 볼수록 빨려들 만큼 황홀하다. 오직 이 광경을 보는 것 만으로도 추라우미 수족관을 방문할 이유는 충분하다. 투어의 마지막 코스는 ‘오키나와 속 미국’이라 불리는 아 메리칸 빌리지다.

 

 

오키나와는 제2차 세계대전의 격전지 로 약 30년 동안 미군 주둔으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아메리칸 빌리지는 1981년 미군 비행장 부지를 반환받 은 자리에 세운 거대한 도시형 리조트다. 이국적으로 채 색한 크고 작은 리조트와 건물, 야자수가 늘어선 거리, 미국 본토의 맛을 구현하는 레스토랑과 펍, 아기자기한 매력의 카페, 거대한 대관람차와 놀이 시설 등 눈길 닿 는 곳마다 미국의 어느 휴양지에 온 듯한 착각이 들게 한다.

미국의 휴양지를 고스란히 옮겨놓은 듯한 아메리칸 빌리지. 먹고, 마시고, 쉴 수 있는 휴양의 3박자를 모두 갖췄다

 

오키나와의 바다가 붉게 물드는 석양 무렵에는 전 망 좋은 선셋 비치에 앉아 황홀한 일몰을 감상하며 쉬 어 가기 좋다. 어둠이 짙을수록 오색찬란한 조명은 더 욱 빛을 발하고, 휴양지를 찾은 여행자의 들뜬 마음도 쉬이 진정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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